대학생! 핀테크 스타트업 PO가 되다

17.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이겨내기까지

kdb1248 2024. 1. 13. 08:32

어느 회사에 다니든,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회사를 다니는 기간 중 힘든 시기가 한번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에겐 10개월간의 재직기간 중 23년 3~4월이 아마 그 시기가 아닐까 싶다.

 

이번 글에선, 내가 힘들었던 시기를 어떻게 이겨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배우고 느꼈던 것들은 어떤 것들인지에 대해 적었다. 글을 읽는 분들 중 누군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이 글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당시의 나는 왜 힘들었는가?

이전에도 분명 바쁘긴 했지만 3~4월엔 이전의 3배 이상 바쁨을 경험했다.

내가 PO를 맡았던 서비스인 테이블 오더와 관련한 기존의 업무는 그대로 있으면서,

 

그 외에 크게 4가지의 일들이 추가됐다.

1. 계약 발주 외 거의 모든 업무를 담당한 “맞춤형 태블릿 제작/펌웨어 기획&테스트/공급”
2. 사내에서 정말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관련 경험이 있는 분이 거의 없던 “외부 시스템 연동 프로젝트”
3. 조직구조 개편으로 인한 스쿼드 인원 변화, 맡은 Product 수 증가 (4명-> 10명, 2~3개의 product를 더 맡게됨)
- 담당 메이커(개발/디자이너) 수가 많아짐에 따라 만들어야 하는 기능수도 3배, 더 복잡해진 메이커 리소스 매니징 
4. 이전엔 나 혼자 스쿼드 멤버를 매니징 했다면, 이제는 새로 입사한 PO 분과 함께 스쿼드를 담당하게 됨.
 - 이에 따라 초기에 서로 간에 맞춰가야 할 부분이 꽤 있었음.

 

큼직한 것들만 적어도, 기존에 비해 업무 규모가 꽤 커진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게 난생 처음 겪는 상황들이었고, 담당했던 거의 모든 업무가 당시 회사입장에선 너무나 중요했던 프로젝트였다.

 

단순히 일이 많은 건 그렇게 까지 문제는 아니었다. 더 힘들었떤 부분은 너무 다양하고 성격이 다른 일을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다 보니 신경이 분산되는 부분이었다. (업무 중간중간 끼어들어오는 이슈 대응이나 타 부서 소통 등등) 꼼꼼하지 못하게 일처리 하는 걸 정말 싫어하는 데, 나도 모르게 놓치는 게 자꾸 생기다 보니 스트레스가 더 쌓였던 것 같다.

 

3~4월 1달간, 내가 취했던 Action

한 번도 이런 상황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기에, 나조차도 "어디까지가 내가 감당가능한 업무 범위지?"에 대한 감이 없었다. 그래서 3월부터 4월, 약 1달간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그냥 일단 해보자!"라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인데, 혹은 내가 좀만 더 노력하면 할 수 있는데 못한다고 단정하는 것일까 봐. 그래서 당시 1달간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 점심을 거르고, 야근도 거의 매일 할 만큼..! 

 

그런데 티를 최대한 안 내려고 한다지만 힘든 게 주위사람들에게 티가 나긴 했나 보다. 같이 일하는 직원분들이 힘들어 보인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시기도 했고, 심지어 마케팅팀 Lead 분께서 사내메신저 개인 dm으로 요새 힘들어 보인다고 맛있는 밥이라도 한 끼 사드리겠다고 하셨을 정도니까 (그런데 그것도 정말 죄송스럽게도 일이 많아 못 먹겠다고 했었다…. 점심을 거를 때가 많다고 흑흑..)

 

그러던 4월의 어느 날

그렇게 1달을 버티다가, 4월 어느 금요일이었던 것 같다. 보통은 다들 일찍 퇴근하는 금요일이지만 일 때문에 늦게 퇴근을 한 날이었다. 집에 들어오니 갑자기 너무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을 폈다.

"힘들 건 알겠는데, 대체 내가 뭐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하는 거지? 단순히 일이 많아서??" 나조차도 명확한 원인을 잘 모르겠어서, 글로 적어보면 조금 나을까? 라는 생각에 노트북을 피고 글을 적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번 글 초반에 적었던 것처럼, 당시엔 다양한 일들을 한꺼번에 맡게 되고 그에 따라 놓치는 일들도 생기고 하는 부분들도 있고 하다보니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 당시 혼자 글을 적어보기 전까지는, 내가 정확히 어떤 요인들 때문에 힘든지를 나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왜 내가 힘들어할까에 대해 하나하나 항목별로 적다 보니, 글 초반에 적었던 내용을 포함해 5~6개 정도의 항목들이 나왔다. 적고 나니 확실하게 보였다.

 

1달간 꾸역꾸역 어떻게든 해보려 했었지만 미련한 것이었다고. 이건 현재의 내 역량 범위를 물리적으로 넘어서는 일을 하고 있던 거였다고. 나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회사에서 조직적/구조적으로 어느 정도 조정을 해줘야 하는 부분이겠다고. 이를 느낀 직후, 바로 CPO님과 1on1 약속을 잡았다.

 

당시 혼자 써내려갔던 글의 일부.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과 감정]을 정리해보려고 노력했었다.

 

 

CPO님과의 1on1

1on1을 할 때,내가 힘든 이유에 대한 글 원본(위 사진 참고)을 그대로를 들고 갔었다. 글을 바탕으로 CPO님께 있는 그대로 내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했었다. "최근 1달 최대한 버티면서 일을 해봤는데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근데 저조차도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어서 왜 힘든지에 대한 글을 지난주에 써봤습니다. 제가 지금 이런 업무를 맡고 있고, 추가적으로 이러이러한 상황적 요인 때문에 더 힘든 상황입니다. 나름대로 최대한 해봤지만, 제 역량으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라고 설명드렸다.

 

내가 하는 말들을 10분, 15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묵묵히 들어주시던 CPO님께선 내 말이 끝나고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그리고 이 1on1 이후, 회사 차원에서 여러가지 도움을 주시고 같이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해 주셨다. 또 같이 스쿼드를 운영했던 PO분께서도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주셨는데, 감사하고 또 죄송스럽게도 role을 많이 가져가 주셨다. 회사에서, 그리고 함께하는 직원분들이 다방면으로 힘써주신 덕분에 그 뒤부턴 더 괜찮은 상황에서 회사를 다닐 수 있었다. (이 글을 읽으실진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번 경험을 통해 배우고 느낀 것

1. 힘든 걸 이야기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내가 해낼 수 있는 범위인지,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한 일인지 판단하는 것은 중요하다.  내가 개인적인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과, 구조적인 도움이 필요한 일은 분명히 다르다. 무조건 억지로 다 해내려는 것보단, 이를 잘 판단하고, 적절한 언어와 방식으로 회사에 잘 요청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힘든 걸 이야기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는 말을 이번 글을 통해 하고 싶었다. 힘든 걸 남에게 그것도 공적인 장소인 회사에서 이야기하는 게 약점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나 일 잘 못해요"를 드러내는 것 같이 느낄 수도 있을 듯하다. 실제로 나도 그랬고. 그래서 초반엔 회사에 힘듦을 이야기하는 걸 무의식적으로 꺼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이번 일을 통해 알게 됐다. 

 

오히려 혼자 이겨내려 할 때보다 더 수월하게 일을 해결할 수 있고, 주위엔 도움을 줄 수 있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실제로 CPO님 뿐만 아니라 스쿼드 안의 멤버 분들께도 이런 상황들을 솔직하게 말했었고, 스쿼드 분들도 일을 하시는 과정에서, 그리고 일 외적으로도 많은 도움/조언을 주셨었다 (때로는 인생 선배로서, 형/누나로서).  너무 많은 일을 한 번에 맡고 일을 제대로 못 처리하고 있는데 억지로 그걸 어떻게든 끌고 가는 것보단,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을 제대로 잘 처리하는 게 낫다는 것. 이를 위해 적절히 내 상황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조정 요청을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순간이었다.

 

2. 만약 대기업을 갔다면 연차가 꽤 쌓인 후에야 가능한 경험 아니었을까? 

(물론 난 대기업을 아직 안 가봐서 모른다...ㅎㅎ 그냥 주위에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든 생각이니 참고바란다.)

 

실제로 대기업에서 팀장급의 위치에 가게 되면 이런 비슷한 상황을 많이 겪는다고 한다. 본인의 업무뿐 아니라, 타 후배직급/타 부서 인원과 매니징&소통해야 하는 업무도 많아지고, 기존에 주어진 일을 받아서 할 때와 달리 주도해서 일을 처리하게 되면서 여러 챌린지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또 한 번에 1가지가 아니라 여러 업무를 처리하게면서 정신없음이 배가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소위 말하는 "팀장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나의 직책이 팀장이었던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직무 특성상 모든 부서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야 하는 점과 메이커(디자이너, 개발자) 분들, 그리고 Product에 대한 전반적인 매니징을 해야 했다. 어떻게 보면 팀장스러운 업무를 했던 것 같다. 그렇다 보니, 그 자리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고충들을 미리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누군가는 대기업에서 몇 년을 보내고 나서야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을 미리 경험해볼 수 있었고, 이를 나름의 방법으로 해결하고 이겨내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조금은 빠르고 어린 시기에 이 경험을 한 게 누군가는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쪽으로 생각해 보면 행운이라고도 생각한다. 이 나이에, 이 경력에 하기 힘든 소중한 경험이었고, 스타트업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장점이라고도 생각한다. 언제가 될진 몰라도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그래도 1번 겪어봤기 때문에 그때는 조금 더 수월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3. 내 상황과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전달하기

내 상황과 감정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글을 쓰고 이를 전달해 보는 경험은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CPO님과 1on1을 하며 들었던 말 중에 인상 깊었던 부분이 다음 부분이었다. "CPO인 본인 입장에서도 직원들이 힘들다고 하면, 최대한 이를 도와주고 조정해주고 싶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게 힘들다(문제)를 모르면, 어떤 부분을 해결해줘야 할지(솔루션 도출)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이렇게 글로 각각의 항목에 대해 구분해서 써주다 보니, 문제를 좀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고 어떤 부분을 도와줄 수 있을지가 더 잘 보였다."

 

글이라는 것은 내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정리할 수 있게 해 주고, 내 상황에 대해 남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해 주는 수단이라는 걸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됐다. 이 부분은 꼭 회사 업무가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차원에서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지금 내가 이렇게 회사생활에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정리하고 공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블로그를 쓰고 있는데, 이것도 어찌 보면 이때 글을 썼던 경험의 영향이 조금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4. 신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래도 몇 달간 내가 열심히 해왔던 것을 알기에 그리고 이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회사와, 직원분들, CPO님이 내 말을 잘 들어주시지 않았을까 싶다. 일을 대충대충 해왔었다면,아마 내 상황에 대한 힘듦을 이야기해도 잘 안 들어주시지 않았을까? 그런 면에서 이번 경험은 회사/직원분들과의 신뢰 그리고 평소의 모습과 일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번 글에선, 회사 재직기간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던 23년 3~4월에 대한 이야기를 써봤다. 누군가에겐 이번 글이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글을 마쳐본다.

 

 

 

 

Profile:

Linked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