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핀테크 스타트업 PO가 되다

20. (완결) 대학생, PO로서의 10개월을 마치며

kdb1248 2024. 2. 24. 12:29

지난 19개의 글에서 10개월간의 PO 생활에서 있었던 사건들에서 느낀 점을 중심으로 글을 적었다. 

이번 20번째 글은 "대학생! 핀테크 스타트업 PO가 되다" 공식적인 마지막 글이다. 이번 글에선 대학생에 불과했던 내가 10개월간의 PO 생활이 모두 다 끝난 후 느꼈던 전반적인 감정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10개월간의 PO 생활 후 느낀 것

1. PO, 아름다운 직업은 아니다. 

PO 업무를 회사에서 해보기 전, 대학생의 입장에서 보는 PO는 그냥 "멋있다"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직무였던 것 같다. 팀과 프로덕트를 리딩하고, 멋있게 전략을 짜고, 엄청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할거 같은..

 

하지만 실제 실무를 하면서 느꼈던 것은 적어도 스타트업에서의 PO는 단순히 책상앞에 앉아서 전략만 짜는 일이 아니며,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직업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었다. 서비스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세세한 요인들을 하나하나 신경 써가면서도, 큰 그림을 놓치지 않아야 하며, 필요에 따라 개발-디자인 외의 모든 일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 소위 말하는 Mini CEO의 역할과 비슷하다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또, 팀과 프로덕트를 리딩하는 권한이 주어진 만큼, 그것 이상의 책임이 따를 수밖에 없고 이를 제대로 잘 수행해 나가는 과정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2. 그렇기 때문에, PO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책임감" 이 아닐까?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내가 경험했던 PO의 역할은 하나의 Mini CEO에 가까웠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스킬적인 요소(ex. 데이터 분석 능력, 사업적 시야) 보다도 어떻게든 맡은 일에 대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책임감"이 PO에게 가장 중요 하게 느껴졌다. 그 과정이 조금은 투박하더라도, 본인의 서비스를 위해선 네 일, 내 일 가르지 않고 무엇이든 해서 어떻게든 결과물을 만드는. 물론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스킬적인 요소들은 정말로 필요한 게 맞고, 규모가 커질수록 분업화/효율화가 필요한 게 맞다. 하지만, 시기/상황 등 모든 걸 떠나서 하나로 관통하는 것이 있다면 "책임감" 이라는 마인드 셋이지 않을까 싶다. 

 

회사의 C-level 분들이 뭣도 없는 대학생인 나를 왜 믿고 맡겨 주셨을까? 를 지금 다시 생각해 봤을 때도, 결국엔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어떻게든 결과물을 만드는 책임감을 보여드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ex. 서비스 출시 초기 새벽 1시에 유저와 직접 통화하며 이슈를 대응했던 일이라던가, 다소 운영업무에 가까웠지만 태블릿 제작 업무의 세부적인 것들을 다 챙겨 가며 어떻게든 자체 태블릿을 출시했던 일 등) 

 

3. 서비스의 무게

"돈" 이 결부되지 않은, 단순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 때 와는 차원이 다른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맡았던 테이블 오더 서비스는 식당 내의 주문/결제를 다루는 서비스다 보니, 서비스 이용자인 사장님의 생업과 정말 밀접한 서비스였다. 유저의 생업과 밀접한 서비스를 만든다는 것은, 유저가 서비스에 돈을 지불할 용의가 훨씬 커지는 것도 맞다. 하지만 그런 만큼,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이 감당해야 할 책임감이 크다는 것. 회사 내부에서 바라봤을 땐 별거 아니어 보이는 버그 하나, 운영이슈 하나가 그들의 생업엔 엄청나게 큰 영향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누군가는 너는 PO일을 하는 동안 기능 기획업무보다 안정화 작업이나, 이슈대응 같은 운영적인 업무에 시간을 왜 이리 많이 쏟았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맡았던 서비스에선 어떠한 기능하나보다도, 유저가 겪고 있는 이슈에 대해 빠르게 대응하는 것. 그게 유저의 서비스 만족도에 더 중요한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결국에 PO라는 직무 자체는 그게 어떤 "수단"이 됐던(신규 기능을 개발하는 것이든, 운영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든) 유저의 서비스 만족도를 높이고 비즈니스를 더 안정화시키고 키우는 "목적" 을 이루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게 어떤 일이든, 서비스의 더 나은 방향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인데 인력이 부족하다면 PO인 나라도 뛰어야 한다가 그 당시의 내 생각이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의 첫 PM/PO 경험에서 남다른 무게를 가진 서비스를 기획하고, 운영해 볼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떤 서비스를 경험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어떤 서비스가 됐던, 이때 겪었던 무게감을 잊지 않고 책임감을 가진채 서비스를 기획하고 운영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4. PO라서 가능했던, 다양한 업무의 직-간접 체험

PO라는 직무 자체가 업무 범위도 넓을 뿐더러, 워낙 다양한 부서와 협업과 소통을 한다. 거기에 [초기서비스+ 스타트업]이라는 특성 덕분에 더 넓은 범위의 업무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각 부서의 업무가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 이를 통해 회사는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아직은 사회 초년생인 내 입장에서 이렇게 다양한 부서/업무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직무를 직접 경험해보고 커리어를 정할 순 없는 당연한 나의 상황 상 정말 좋았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사회 초년생이 PM/PO 업무를 작게나마 경험해 보는 것은 적어도 커리어 탐색, 회사 운영에 대한 이해라는 관점에서 꽤 좋은 경험이 아닐까 생각했다.

 

5. 내가 잘하는 것, 아직은 부족한 것에 대해 깨닫는 기회

위에서 말한 것처럼 다양한 업무를 직접 하기도 하고 지켜보기도 하면서 현재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먼저 현재 잘하는 부분은 "꼼꼼함", 소위 말해서 미시적인 부분을 잘 챙긴다고 느꼈다.

관련해서 개발자 분이 마지막에 해주셨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두범님이랑 같이 기능을 만들면 안심이 된다고. 기획할 때부터 엄청 세세하게 케이스를 생각해서 기획해 주고, QA도 되게 꼼꼼하게 해 주셔서 기능을 배포하기 전에 안심이 된다"는 말이었다.

이런 꼼꼼함은, 세세한 것도 놓치기 싫어하는 평소의 내 성격 때문인 것도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큰 경력이 없는 내가 유일하게 가져갈 수 있는 장점이라고 생각해서 더 모든 것에 대해 꼼꼼하게 보고, 놓친 것은 없나 생각하고 움직였지 않았나 싶다. 그게 기능과 관련된 것이건, 세세한 운영적인 부분을 신경 쓰는 것이든 말이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던, 직원분들의 피드백을 통해서 이렇게 세세한 부분들을 꼼꼼히 챙기는 데에 내가 상대적으로 장점이 있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반대로 현재 부족한 면으로는 "큰 그림을 보는 능력"이나, "팀 운영이나 업무에 있어서 효율화할 지점을 파악하고 효율화 하는 능력"이 있다고 느꼈다. 일을 하면서, "아 내가 좀 더 큰 그림을 바탕으로 움직였으면 어땠을까" , "이런 부분은 내가 먼저 나서서 효율화했어도 좋았겠다"라는 생각들이 들 때가 많았다. 실제로 새로 팀에 합류하셔서 몇 달간 함께 일했던 PO 분께서 이런 부분에 정말 큰 강점이 있으셨고, 내가 미시적인 부분에 집중하느라 팀에서 놓쳤었던 부분들을 많이 개선해 주셨었다. 물론 이런 큰 그림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은 회사 경험이 아직은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 나은 기획자가 되는 데 있어서는 꼭 길러야 되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이런 역량들을 조금 더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이게 회사를 마치고 나서의 나의 다음 action에도 영향을 미쳤다.)

 

6. 스타트업/창업. 혹은 높은자리에 대한 환상이 깨지다

회사 생활 이전의 나에겐, 언젠간 [내 사업을 창업해서 운영하는 것 혹은 초기 창업팀에 합류하는 것, 회사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ex. c-level) ]에 대한 환상 및 동경이 막연히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회사 생활을 제대로 해보면서 이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이런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들이 "아예 0으로 없어졌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은 신중해졌다고 해야 할까.

 

스타트업이다 보니, 회사의 C-level 분들이 일하시는 모습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또 PO일을 맡고 담당하게 되는 프로젝트와 인원이 늘어나면서, 누군가를 리딩하는 역할이 가지게 되는 책임감에 대해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를 리딩한다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모습 뒤엔, 엄청나게 고민하고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도 그걸 어떻게든 이겨내야 하는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어려움을 감당할 자신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 혹은 자리가 스타트업/창업, c-level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지금의 회사 대표님과 같은 life를 살라고 하면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한다고 했을 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실제 경험을 해보면서, 스타트업/창업 혹은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됐다.

 

7. 쉽지만은 않은 PO. 다시 하기로 결정한다면 결국 "사람" 때문이지 않을까?

10개월의 생활로 PO라는 직무는 정말 쉽지 않은 직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쉽지 않은 직무를 왜 다시 하려고 해? 라는 질문을 누가 한다면 아마 결국 "사람" 때문에 다시 하려고 해!라고 대답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1) 유저 2) 팀원] 크게 2가지가 있다.

 

1) 유저 측면에서 봤을 땐,

"유저(사람)"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이를 통해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대한 이해를 더 잘 해갈 수 있기에 PM/PO라는 직업이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테이블 오더, POS 등 오프라인 매장에 관련한 서비스를 하면서 이전엔 알 수 없었던 식당 사장님들의 심리,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 그들의 사고방식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알아갈 수 있었다.

인간은 모든 유형의 삶을 직접 살아볼 수는 없다. 그런데 PO라는 직무의 본질은, 특정 사람 유형(서비스의 유저)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나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직무라는 점이다. 어찌 보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로 인해 돌아가는 이 세상의 일부분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게 알게 해주는 직무라는 점. 그리고 그 사람들의 삶을 개선해서, 전체적인 사회를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바꾸려는 일을 한다는 게 PO라는 직무의 매력포인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2) 함께하는 팀원 측면에서 봤을 땐,

PO라는 직무 특성상 정말 다양한 직무의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협업을 한다. 그것도 그들의 한가운데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서 어떤 직무보다도 사람과 부대낄 일이 많은 직무라고 생각이 든다.

 

이번 회사에서도 그렇고, 이전의 여러 프로젝트에서도 그렇고 결국에 왜 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가를 생각해 봤을때,

결국 2가지 이유로 귀결됐다.

[1) 특정 결과보다도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그 "과정" 자체가 좋아서 2) 나로 인해 함께하는 팀원들이 더 편하게, 즐겁게 일했으면 좋겠어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고 싶어서)]  

 

이를 생각해보며, 결국 사람들과 가장 부대끼며 일하는 PO만큼 내가 일을 가장 열심히, 잘할 수 있는 직무는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10개월간의 꽤나 힘들었던 회사생활을 돌아보며, 그 과정에서 남은 것을 생각해봤다. 물론 어떠한 성과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10개월간 같이 으쌰으쌰 하면서 서로 의지하고 배려하면서 일했던 직원분들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직원분들과 함께 서비스를 만들어가고 발전시키는 과정, 그리고 그분들이 나로 인해 조금이나마 힘을 얻고 도움을 받았다고 해주실 때, 결국 그게 10개월간 일이 힘들어도 끝까지 힘을 내서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회사 면접을 보러갔을때, CPO님께서 왜 PO가 되고 싶냐고 질문하셨던게 생각난다. 나는 아래처럼 대답했던걸로 기억한다.

"기존의 저의 가장 큰 인생 가치관은 '사람들에게,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PO라는 직무는 1) 서비스를 통해선 사용자에게, 2) 그리고 협업하는 과정에선 함께 하는 팀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일이라는 점에서 어떤 직무보다 제 가치관을 가장 잘 실현시킬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어서 PO가 되고 싶습니다."

 

당시엔 제대로 회사에서의 PO를 경험해 본 적 없는 상태에서 했던 답변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회사 실무를 경험한 후에도 PO에 대해 바뀌지 않은 나의 근본적인 생각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치며

길었던 "대학생! 핀테크 스타트업 PO가 되다" 의 공식적인 마지막 글이 마무리되었다. 이대로 마무리 지을까 했지만, 한 소재로 20여 개의 글을 썼기에 "연재 후기" 정도는 남겨놓는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음 글에 연재 후기를 짧게 적고 정말로 "대학생! 핀테크 스타트업 PO가 되다" 시리즈를 마무리 지으려 한다.

 

Profile:

Linked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