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핀테크 스타트업 PO가 되다

08. 대학생 PO가 직원들의 신뢰를 얻기까지 下 - 새벽 1시에 식당 사장님 전화를 받다.

kdb1248 2023. 10. 4. 19:50

지난 글 끝에서 잠깐 소개했다시피, 테이블 오더 서비스의 PO를 맡고 12월 1달간 업무에서의 여러 노력들을 통해 직원들의 신뢰를 얻고자 했다. 물론 이런 세세한 노력들도 직원분들의 신뢰를 얻는데 한몫했겠지만, 12월에 있었던 하나의 사건이 나에대한 신뢰도를 확 올리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글에선 그 내용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1. 사건 배경

때는 12월 말, 테이블 오더 서비스에 선불형 버전이 처음 출시 됐을 때였다.
(선불형: 테이블 오더 기기에 카드리더기가 달려, 손님이 자리에서 직접 결제까지 할 수 있는 걸 말한다.)

선불형 테이블 오더 기기

12월 말에는 회사에 직원들이 연말 장기 휴가를 떠나는 리프레시 휴가가 있었다. 딱 그 시기에 해당 선불형 버전을 기획한 CPO님도 회사에 안 계셨고, 다른 직원분들도 대거 휴가를 떠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해당 선불형 버전이 실제 매장에 첫 설치가 나갔다. 

2. 사건 발생 

첫 설치가 나갔던 밤이었고, 퇴근 후였다.

(그날 연말이라 2~3년만에 보는 과 동기를 만나던 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입사 후 거의 처음으로 퇴근 후 약속을 잡은 날이었다.)

 

친구를 다 만나고 집에 갈려고 지하철에 타려는 순간, 슬랙(회사 메신저)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선불형 설치를 나간 현장에서 뭔가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해당 서비스가 나온지 얼마 안 된 상태여서 매뉴얼이 완벽하지 않아 CX/운영 분들도 대응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문제해결을 위해선 해당 문제가 발생한 맥락 파악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사장님이 워낙 강성 이신 사장님이라 단순 채팅상담으로는 맥락파악이 쉽지가 않은 상황이었고, 빠른 문제 해결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나도 해당 서비스를 직접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완전한 기능이해가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회사내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두렵기도 했지만, 영업팀 분께 해당 사장님 번호를 받아서 직접 전화를 해서 문제 발생 맥락을 파악하고자 했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내내 전화를 했고, 심지어 집앞 역에 도착하고 나서도 전화가 끝나지 않아서 역 플랫폼에 계속 서서 전화를 했던 게 기억이 난다. 통화 중간중간에 슬랙(회사 메신저)을 통해 진행상황을 보고했었다. 

그리고 통화를 하다 핸드폰 배터리가 나가서, 빠르게 집에 달려가서 다시 전화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거의 새벽 1시가 넘어서까지 사장님과 통화를 해서 문제를 해결했었다. (통화 중간중간 사장님께 욕설도 들었었다...ㅎ)

 

그럼에도 일부 문제는 그 다음날까지도 해결이 안 됐었고, 결국 [사장님을 달래는 목적+ 문제 해결 목적]에서 세종시에 있는 매장 방문을 결정하게 된다. 

 

3. 매장 방문

운영팀 직원분, 그리고 하드웨어/결제 쪽 PO를 맡고 계신 분과 나 이렇게 3명이서 매장에 방문을 했다. 

매장에 방문해서, 통화로는 해결못했던 문제들을 하나하나씩 해결하고, 사장님의 기능에 대한 불만이나 요청사항도 들어드렸다. 일정 부분은 휴먼터치(사장님에 대한 감정적 공감) 도 해가며 문제를 해결했다. 

 

매장에 가는 차안에서 약간은 무섭기도 했지만,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드리면서 사장님의 화를 누그러뜨리고 결국에는 와줘서 고맙다고 믿고 써보겠다고 해주심에 그래도 감사했던 순간이었다. 음식점에서 나갈 땐 사장님께서 욕한 것에 대한 사과도 짤막하지만 하셨었다. 또, 이번기회에 기능적으로도 운영적으로도 서비스에서 보완할 지점들을 덕분에 많이 파악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뒤 몇주간은 내 개인번호로 사장님이 기능 문의/요청을 자꾸 하셔서(주말/연휴에도...) 조금 쉽지 않았긴 했다. 나중에 이 문제는 어찌어찌 해결하게 된다.

 

4. 느낀 점

이렇게 사장님에게 새벽1시에 전화를 받고, 실제 매장에 방문하고, 그 뒤에 주말에도 연락에 한동안 시달리면서 느낀 것들이 참 많다. 

 

1. 사장님에겐 생업과 엮여있는 문제다

우리 회사의 서비스 사용이 사장님에게는 생업과 연관된 부분이라는 점이다. 식당 사장님에게 있어서 음식의 주문, 결제는 그분들의 생업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는 것. 어찌 보면 이분들에게는 네이버, 카카오보다도 우리 회사의 서비스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 이렇게 생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서비스에선 용납될 자잘한 오류가 더 크리티컬 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의 오류가 매출에, 식당 평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 

 

2.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책임감

그런 차원에서 내가 만들고 있는 서비스에 대한 책임감이 더 생기게 되었다. 다른 서비스라면 그냥 넘어갈 사소해 보이는 오류도 쉽게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 서비스의 완성도, 운영 등 여러 측면에서 내가 만드는 서비스가 이분들의 삶에 정말 큰 영향을 미치며 그에 따른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 말 그대로 PO(Product Owner)로서,  내 제품에 대한 책임감을 더 느끼고 일하자고 생각했다.

 

3. 소프트웨어만으론 안된다.

이 분들 입장에선 소프트웨어 뿐만 아니라, 하드웨어, 심지어는 각종 운영적인 부분들까지도 하나의 서비스로 인식한다. 그리고 일련의 만족도/불만족도를 회사에게 표출한다는 걸 알게 됐다. 적어도 이 회사에선 단순히 앱 기획(소프트웨어)만 신경 쓰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고 느꼈다. 총체적으로 관리/개선을 해야 하는 게 PO(Product Owner)로서 내 역할이라고 느꼈다. 부족했던 하드웨어적인 지식들(ex. 주방용프린터, 태블릿, 충전기, 케이블, 신용카드조회기, 와이파이 등)에 대해서도 더욱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 운영적인 부분들도 경시하지 않고 하나의 고객 경험차원에서 더 세세하게 챙기자,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내가 더 파악해서 체계를 운영팀분들과 같이 만들어나가자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다. 

 

4. 소상공인 서비스에 대한 환상은 깨라

처음에 회사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소상공인 대상 서비스라는 것에 막연한 환상이 있었던 것 같다. 이전에 대학에 다닐때도 Enactus라는 소셜 벤처 창업학회를 열심히 하면서 사회적 가치에 많은 관심이 있던 나였기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이번일을 겪으면서 누군가의 생업에 가까운 서비스일수록, 사용자가 서비스에 돈을 지불할 확률도 높지만 그만큼 그 서비스에 대한 민감도도 정말 높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만큼 서비스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더럽고 지저분한 것들도 정말 많은 시장이라는 것. 왜 이 시장에 대기업들이 쉽게 안 들어오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 차원에서 소상공인 서비스에 대한 환상은 깨고, 보다 현실적으로 이 시장을 바라보게 됐다. 

 

5. 사건 후 회사에서는

사건 당시, 그리고 사건이 있은 후 많은 회사분들이 내 존재를 알게 됐다. 욕설하는 사장님의 강성 상담내역이 슬랙(회사메신저)에 올라오고  새벽까지 대응하고, 매장 방문을 했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아마 많은 직원분들이 고생했다와 안쓰러움 차원에서 봐주셨던 걸로 기억한다. 한편으론 그렇게 본인이 욕을 먹어가면서도 전화를 하고, 직접 매장에 찾아가고, 주말에 연락을 받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턴인데도 저렇게 해?" 하며 책임감이 있는 애라고 회사분들이 느꼈던 것 같다. 

 

어찌보면 이 순간이 개발/운영/BD 팀 할 것 없이, 여러 딱지(대학생, 인턴, 나이) 떼고 하나의 PO로서 처음으로 회사분들로부터 신뢰를 얻게 된 순간이 아닐까 싶다. 연말 휴가로 인해서 CPO가 없는 상황에서, 본인이 주도해서 만든 서비스가 아님에도, 기능도 잘 모름에도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고 헌신하는 모습 이 영향을 준게 아닐까?

 

- 개발자 분들 입장에선 본인들이 개발한 서비스에서의 오류인데 그걸 앞단에서 욕을 먹어가면서 해결하는 모습. 이걸 보며 믿고 개발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것

- 운영팀 입장에선 어찌 보면 운영팀의 일이야 라고 넘기고 관망할 수 있는 지저분한 강성매장의 문의/불만들을 니 역할 내역할 가리지 않고 선뜻 나서서 해결하는 것

- BD팀 입장에선 본인이 영업해서 계약한 매장들에 대해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 줘서, 이 서비스를 믿고 그냥 팔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주는 것

 

이런 부분들이 직 간접적으로 회사분들께 보여져서, 회사분들이 PO로서 나를 인정해 주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이 일이 있고 1월부터는 CPO님께서 본인이 뒤에서 같이 봐주시는 걸 멈추고, 아예 이 테이블 오더 서비스를 나에게 혼자 주도적으로 PO 역할을 하라고 하셨다. 물론 이 일 하나만의 이유는 아니었겠지만, 덕분에 대학생, 인턴, 나이 그런 것 상관없이 하나의 PO로 인정을 받고 일을 하게 되었다. 

 

물론 처음 일을 겪었을땐 내가 회사에 들어오기 전 처음에 생각했던 PO의 역할과 정말 달라서 이게 맞나?라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정신적,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했고.  

하지만 10개월이 지난 지금 다시와서 생각해 봤을 때, 결국 PO라는 역할의 정의는 "어떻게든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 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소프트웨어적인 문제건 아니건, 내가 관여한 일이든 아니던, 큰 틀에서 Product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리고 고객의 문제라면 어떻게든 해결해 주는 사람. 단순히 고상하게 기획만 하고, 전략만 짜는 게 아니라! 

이걸 몸으로 배울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런점에서 그 사장님에게 살짝, 아주 살짝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서 이번 글을 마쳐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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